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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라이프

[토마의 노가다 라이프 #25] 공사가 끝나고 난 뒤

 

 

 

 

점점 완성되는 공장 그리고 숙청의 시작

 

때는 4월 말, 공장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내가 투입되었던 작년만해도 뼈대만 세워졌던 공장은 이제 지붕과 외벽이 완벽하게 갖춰졌고 각 서포트에는 우리 업체 반장들이 깔아놓은 배관들로 빼곡하다. 내부는 각종 생산기계들이 설치되었다. 공장의 완성도를 100으로 두고 보면 80이상은 넘은 것 같다. 그리고 공정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업체들의 숙노 숙청은 시작된다. 필요할 땐 취하고 완성되면 버린다. 업계의 생리이고 반장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참 기분이 묘해지는 시점이다. 

 

 

기계들의 시운전 소리는 내 숙노 운명의 종말을 알리는 알람이었다

 

 

반장들이 휴식시간마다 아는 형이나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횟수도 더 많아진다. 어이~ 최반장 오래간만이요. 여기 일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 그 쪽은 좀 어떤가 싶어서 말이야. 자리좀 있나 싶어서. 아 그래? 알겠네. 또 연락함세. 결국은 씁쓸한 표정으로 끊는 경우가 많다. 나이 많은 반장들일수록 더 쉽지 않은 현실이다.

 

처음에 40명에 가까웠던 작업인원들은 서포트가 완성되자마자 15명정도가 잘려나갔다. 그리고 배관라인이 모두 연결되고 자잘한 손볼 부분들만 남게 되자, 시운전에 필요한 인원 4명(작업반장, 배관사, 용접사, 조공)만 남기고 전부 잘려나갔다. 사실 '전부'라는 말은 잘못된거다. 아직 나는 아직 잘리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사실 더이상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하니까 쓰는거지 뭐. 내일이라도 짐싸라고 하면 싸면 되는거니까. 

 

이제 우리 업체의 인원은 소상무와 나, 시운전 인원까지 총 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꽃등심은 참 맛있는 고기입니다

 

숙청 전야에는 항상 회식을 했다.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토닥토닥하면서 좋은 마음으로 짐싸시라고(?) 하는 회식인 것 같다. 그리고 인원감축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식도 그만큼 자주했다. 또한 자주하는 만큼 효율적인(값싼) 비용으로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삼겹살을 주로 먹었다. 그런데 이제 6명으로 쪼그라드니까 회식이 삼겹살에서 꽃등심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소상무님도 수십명과 함께 했던 회식비용을 6명이 사용하는거니까 더 고급으로 마음이 급선회한 것 같다. 맨날 삼겹살 구워내면서 잘못 구웠다고 면박받던 나로써는 대환영이었다. 소고기집은 종업원들이 대신 구워주니까 마음편하게 집어먹기만 하면 된다. 여기는 소고기 가격이 미쳤는지 1인분에 4만원대 중반이다. 원래 이정도 가격인지 모르겠지만 제정신으로는 못먹을 것 같다. 소상무님이 먹고 싶은 만큼 시키라고 하길래 체면불구하고 실컷 시키고 많이 집어먹었다. 상무님 충성충성^^) 꽃등심, 살치살, 갈비살 뭐 많이 먹어따.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소고기가 제일 맛있더라

 

 

 

문제는 회식이 끝나고 난 후다. 상무님과 반장님 다들 얼큰하게 취한 터라 내가 트럭을 운전하고 모텔로 돌아가던 차였다. 뒷좌석에서 누군가가 유튜브로 무슨 트로트를 틀더니 갑자기 열창을 하는거다. 그걸 듣더니 소상무가 갑자기 삘이 꽂혔는지 노래방으로 가자고 선동했고 힘없는 노동자들은 이 제안에 환호하면서 어깨를 늘어뜨린 채 노래방으로 입장했다. 마치 자기 앞에 펼쳐진 시간동안 무엇이 일어날 지 아는 사람들처럼.

 

 

 

 

 

빌어먹을 노래방의 추억

 

너무나도 기이한 풍경이었다. 소상무는 가사가 나오는 티비 스크린을 보는지 안보는지 노래와 가사는 빠르기가 전혀 맞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지만 음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음정은 전혀 맞지 않았고 노래방 마이크의 최대출력 제원을 알고 싶다는 듯 소리를 꽥꽥 질러가며 노래 불렀다. 난 노래감상은 커녕 내 고막이 과연 이 소음을 감당할 수 있을 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4인의 반장들은 소상무의 노래실력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인의 반장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1인의 반장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1인의 반장은 탬버린을 흔들기 시작했다

1인의 반장은 노래에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반장의 춤사위에는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의 몸과 팔다리는 분명 음악에 맞춰 신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마지못해 끌려나왔다는 짜증, 분노, 체념이 뒤섞여 묘한 대비를 보여주었다. 인생은 멀리선 희극, 가까이선 비극이라고 하였던가. 그의 춤은 오히려 소상무의 흥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점점 그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스크린을 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소음이 되어갔다. 길었던 소상무의 노래가 끝나자 다른 반장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상무님 가수하셔도 되겠다고 말했지만 진실로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래방 기계는 고장이 난 듯 100점이 나왔다. 스크린에서 홍진영도 소상무에게 이 실력이면 가수해도 되겠다고 애교를 발사했지만 그녀도 그러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좁아터진 노래방에서 5인의 아재들과 함께 뜨겁게 열창했던 그 날의 추억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소상무의 열창 앞에 내 고막은 전율하였다

 

 

 

오랜만에 두드리는 키보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공사는 결국 끝이 났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반년만에 돌아왔던 집은 낯설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알람이 없어도 6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곤 했다. 하지만 나태함은 곧 쉽게 익숙해졌다. 나는 생각보다 더욱 무기력해졌고 집에서 소파위에 누워 뒹굴거리는 의미 없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블로그에 몇몇 글들을 감사하게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나게 되었다. 그래, 나는 노가다 라이프 연재를 계속해야 해. 이걸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 재미있어 하시는 분들도 있어. 그러한 연고로 불성실한 작가 토마가 오랜만에 글을 쓰러 컴퓨터 앞에 섰다.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무슨 글을 써볼까나... 공사가 마무리 되던 때를 써봐야겠다. 소고기 회식이랑 3시간동안 갇혀있던 노래방 이야기도.

 

6월에 소상무가 다음 일거리가 생길 때 불러준댔는데 잘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5월은 너무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글감을 찾기 위해 다시 노가다를 시작해봐야겠다. 집안에 처박혀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이야기는 집구석이 아니라 바깥 세상에 있다. 아무래도 숙노의 삶에 너무 젖어있던 나머지 내가 인력소에서 노가다 첫 발을 내딛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할 지 모르는 인력소 노가다. 그 익사이팅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초심을 생각해야겠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인력소에서 일 해보고 있었던 일들 썰 풀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