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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라이프

[토마의 노가다 라이프 #11] 우리들의 아침을 열어주는 TBM 시간

 

 

 

 

 

군대에는 아침점호, 노가다는 TBM

군대에서 아침 점호가 있다면 노가다 현장에는 TBM이라고 불리는 아침 조회 시간이 있다. TBM이란 Tool Box Meeting의 약자로, 오전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현장 업체의 인원들이 둥그렇게 원으로 둘러모여서 하거나 오와 열을 맞춰 격자모양으로 서서 하는 조회다. 현장에는 다양한 공종의 업체들이 모여서 공사를 한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지금 현장만 하더라도 배관, 서포트, 전기, 철골 등의 업체가 서로 얽혀서 일하기 때문에 TBM을 통해 각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작업에 있어 양해를 구할 내용을 공유한다. 말하자면, 오늘 A지역은 시멘트 타설을 하기 때문에 배관팀은 시멘트 양생이 끝날 때까지는 A지역 작업을 미뤄주세요ㅡ 등의 이야기를 하는거다. 그리고 오늘 작업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신나는 TBM 시간이에요. 모두 줄을 맞춰 서보세요.

 

 

 

예를 들어, 용접작업이 많은 날이면 용접을 하면서 불티가 많이 튀기 때문에 화기감시자들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말하거나 테이블 리프트가(주로 렌탈이라고도 부른다.) 필요한 고소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안전고리를 결속하고 작업하라고 강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몸을 풀기 위해서 아침 체조를 하는데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체조는 생략한다. 체조와 코로나의 상관관계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원청 기업에서 그렇게 지시했으니 하청인 우리들은 그냥 그렇게 따르면 된다. 원래는 오전 7시 반에 하기로 했는데 원청 직원들이 20분이면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우리들도 괜히 일찍 나가게 된다. 아침 먹고 작업인원들이 쉬는 휴게소 컨테이너에 앉아 믹스커피 한잔 마시며 쉬고 있으려니 멀리서 직원들이 나오는게 보인다.

 

 

 

 

높이를 조절하며 고소작업을 도와주는 테이블 리프트, 일명 렌탈이다.

 

 

 

 

“어어~ 반장님 저기 직원들 벌써 나오기 시작하는데요? 우리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허허 이 새끼들은 왜 점점 더 일찍 나오는 것 같냐? 아니 30분에 하기로 했으면 그때 나와야 할 것 아냐?”

 

 

불만분자인 정반장이 또 볼멘소리를 한다. 원청 직원들을 기다리게 하면 하청 직원들은 좋은 소리를 못듣는 걸 뻔히 알기에 괜히 불평 한 번 해 보는거다.

 

 

“토마야, 가서 상무도 나오라고 말해라. 저번처럼 괜히 혼나지 말구.”

 

“네엡!”

 

 

휴게소 컨테이너를 나와서 건너편 사무실 컨테이너로 들어간다. 우리 업체 현장은 컨테이너를 두 개 쓰고 있는데 하나는 작업인원 휴식용 컨테이너고 나머지 하나는 사무실 컨테이너다. 사무실 컨테이너 문을 빼꼼 열고 목만 내민 채로 책상에 앉아있는 상무한테 직원이 TBM하러 나온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상무가 나를 노려보며 대뜸 화를 낸다.

 

 

“뭐라고? 아오! 뭐 이리 빨리 나와!”

 

 

우리 업체 상무는 여기서는 현장소장 역할을 하는데 성이 소씨다. 그래서 작업인원들 사이에서는 소상무라고 불린다. 소소장이라고 하면 말이 좀 웃겨서 그런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에 TBM 시간에 작업인원들은 다 나왔는데 시간이 지났는지를 모르고 소상무만 늦게 나온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만 늦은게 자못 민망했는지 왜 자기한테 TBM 시간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냐고 나한테 화를 냈다. 이번엔 알려 주는데도 화를 낸다. 대체 어쩌라는거지.

 

 

 

 

요즘은 인원이 적어져서 둥그렇게 모여서 TBM을 한다.

 

 

 

소상무가 다른 업체 소장들, 원청 직원들과 모여서 전달사항을 받고 우리 업체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다른 업체 직원들과 원청직원이 전부 한데 모여서 하는 조회인데 코로나로 각자 따로 모여서 하게 되었다. 상무는 우리 쪽으로 오자마자 인원수부터 센다. 그리고 전달사항 시작.

 

 

“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별다른 내용은 없고요. 지금까지 잘하고들 계시는데 용접 작업할 때는 불티방지포 항상 깔고 용접하라고. 아까도 직원이 말하는 게 그거야. 어제 직원이 현장 돌아다니면서 그냥 용접하는 인원을 봤다는데 화기감시자는 대체 뭐하고 있는거야? 조치를 취해야지. 잘못해서 불이라도 나면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라고. 항상 안전이 제일입니다. 좀 더 신경들 써 주세요.”

 

 

반말이랑 존대말을 이리저리 섞어 쓴다. 기분이 묘해지는 화법이다. 소상무는 목소리 톤도 높고 말을 앵앵거리면서 한다. 그리고 말투가 공격적이라서 현장소장이랑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작업인원도 많다. 현장소장이라는 직책만 아니었음 욕을 엄청 먹었을 것 같다.

 

 

“네, 이상입니다. 이반장! 안전구호.”

 

 

소상무가 이반장에게 안전구호를 지시한다. 안전구호는 TBM시간에 하는 독특한 풍습(?) 중에 하나인데 다 같이 독특한 동작과 리듬에 맞춰 구호를 외치면서 안전에 주의하자고 함께 다짐하는 행위이다. 이반장이 나선다.

 

 

“오늘의 안전구호는 ‘안전제일 좋아’입니다. 안전구호 준비!”

 

 

(다함께) “어이!”

 

 

이때, 각자 자신의 몸 앞으로 오른손으로 가위를 힘차게 펼치며 구호 준비 한다. 모두가 동작을 마치면 이반장은 힘차게 선창을 한다.

 

 

“안전제일 좋아!”

 

 

(다함께)“좋아! 좋아! 좋아! (그리고 박수 짝! 짝! 짝!) 파이팅!”

 

 

‘좋아!’를 외치면서 가위를 펼친 손은 박자에 맞춰 힘차게 세 번 찌른다. 그리고 박수를 치고 파이팅 구호와 함께 마무리. 다같이 안전구호 맞춰서 외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더 크게 구호를 외쳐본다. 안전구호와 함께 TBM이 끝난다. 이제부터 오전 일과 시작시간인 8시까지는 휴식이다. 다들 삼삼오오 휴게실 컨테이너로 들어간다. 다시 커피 한잔 때리면서 노가리 까는 시간이다. 이렇게 또 노가다의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