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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라이프

[토마의 노가다 라이프 #8] 함바집으로 가자. 배를 채우자.

 

한식뷔페는 전형적인 함바집 스타일이다.

 

 

 

 

일하다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그렇잖아도 배가 고픈 참이었다. 노가다는 기본적으로 몸을 쓰는 일이다. 연료를 충분히 채워줘야 차가 앞으로 나아가듯, 노동자들도 배를 든든히 해야 힘차게 일을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가다꾼들이 밥을 먹는 식당인 함바집은 정말 중요하다. 맛있는 밥을 먹고 현장에 가서 일해야 하는데 아침부터 맛없는 반찬과 밥을 먹으면 기분 잡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지금 내가 다니는 현장은 지금 먹는 곳에 이르기까지 함바집을 무려 세 번이나 바꿨다. 첫 번째 집은 쌀이 맛없다고 바꿨고 두 번째 집은 저녁에 안주로 삼을만한 찬이 부족하다고 바꿨다. 저녁에는 술 한잔 기울이면서 퇴근하는 반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까탈스럽다고 할 정도로 먹는 것에는 엄격하며 진지하다.

 

 

 

작업반장이 “밥먹고 합시다!”라고 소리치자 현장인원들은 안전모랑 안전벨트를 해제하고 쪼르르 포터에 들어간다. 5분이라도 늦으면 식당에 사람이 바글바글해지기 때문에 잽싸게 먹으러 가야한다. 빨리 먹어야 남은 점심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작업자들은 대동단결하여 식당으로 신속하게 이동한다. 운전자는 미리 시동을 걸고 있고 탑승인원은 타야할 인원이 다 탔는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소리친다 “다 탔어! 출발합시다!” 이 때만큼은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준다.

 

 

 

현관에 널부러진 신발들을 보니 오늘도 일찍 먹긴 글러먹었다.

 

 

 

대부분의 함바집이 그렇듯이 이 곳도 뷔페식이다. 둥그런 흰색 트레이에 자신이 먹고 싶은 반찬을 퍼서 먹으면 된다. 반찬들은 대부분 예측 가능한(?) 한식 종류가 많다. 김치, 무생채, 동치미, 콩나물 무침, 멸치조림, 마늘장아찌, 잡채 등등. 그리고 절대 빠지지 않는 제육볶음! 어디 함바집을 가든 제육볶음은 제일 접하기 쉬운 육류 반찬이다. 만들기 쉽고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요리라 그런 것 같다. 노동자들의 힘은 제육볶음에서 나온다.

 

 

노동자들의 힘은 제육볶음에서 나온다.

 

 

 

 

모두가 줄을 서서 트레이 위에 여러 가지 반찬을 퍼 올리며 둥그렇게 자신만의 음식 산을 만든다. 나는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만 집중공략하는 편이다. 속전속결! 각자 자신만의 함바 공략법을 가지고 있다. 이반장은 흰 밥위에 잡채를 잔뜩 끼얹는다. 고기귀신 김반장은 오늘도 제육만 판다. 이가 없어서 틀니를 한 홍반장은 국수를 먹는구만.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많은 양의 반찬을 담아내며 각자의 취향을 보여준다.

 

 

 

 

줄을 서면서 다른 노동자들의 면면을 살펴 본다. 일이 힘들었는지 피곤에 찌든 얼굴로 무표정하게 밥을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찬 떨어졌다고 사장에게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다. 국적도 다양하다. 중동에서 온 것 같은 친구들도 있고 인도에서 온 친구도 보이며 저 구석에는 혼자 묵묵히 밥을 먹는 중앙아시아 여자도 보인다. 어쩌다가 이 곳까지 흘러왔을까. 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만의 무겁거나 복잡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듯이.

 

 

 

 

오늘은 잡채에 김치... 가볍게 먹어볼까...

 

 

 

 

괜찮은 함바집들은 후식까지 잘 구비되어 있다. 냉면 육수용 냉장고에 식혜나 매실쥬스가 살얼음이 약간 있는 채로 가득하게 담겨져 있어서 종이컵에 국자로 퍼다가 마시면 된다. 나는 밥 먹고 항상 식혜를 마시는데 입가심에 식혜만한 좋은 음료가 없다. 마지막에 가라 앉는 쌀알들은 종이컵을 돌돌 흔들어서 입에 훅 털어넣는다. 아 그리고 당연하지만, 믹스커피도 있다.

 

 

 

 

함바집 계산은 월에 한 번씩 결제하는 방식이다. 각 업체별로 메모장이 있어서 거기다가 날짜와 식사별 인원을 적는 방식이다. 식수(食數) 적는 것은 나같은 막내들이 담당하는 법이다. 밥을 먹고 난 후 인원을 세어보고 꼼꼼히 적는다.

 

 

##월 ##일 중식 26명

 

 

* 현재 1명의 식대 가격은 6천원이다.

 

 

 

이렇게 매일 적다가 한 달에 계산서를 발행하는 식이다. 내가 다니는 업체는 저녁에는 소주랑 음료도 계산해준다. 지금 20명 중반대로 운영되는 우리 업체의 한달 식비만 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업체 식대 메모장을 10개 넘게 가지고 있는 이 함바집의 한달 매출은 대체 얼마일까 계산해 봤는데 억대가 나오더라.

 

 

 

 

 

아 오늘도 배를 채웠다. 배를 채우면서 다시 일할 힘을 얻는다. 식후 음료를 마시면서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해본다. 따스한 햇살을 보면서 감상에라도 젖어볼라 하는 때 저기서 정반장이 소리친다. "토마야! 얼른 차 안타냐!" 이 아재들은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정말 빨리 먹는다. 막내인 나도 정신없이 먹고 있으면 다른 반장들이 급하게 먹지 말라고 한다. 본인들은 이미 다 먹고 식당을 나가면서 말이다! 조금 늦게 나가면 핀잔을 들을 거 같아서 눈치껏 빠르게 먹는다. 어휴. 양지바른 곳에서 좀 누워서 쉬다가 한시부터 다시 일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