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가다 라이프

[토마의 노가다 라이프 #18] 숙식노가다(숙노)의 장점 Top 5

 

 

 

벌써 세번째 현장이라니!

우연히 입문한 숙노라는 길을 걷게 된 지 벌써 몇 달이 되었으니 시간은 화살과 같이 빠르게 간다는 옛말이 과히 틀리지 않다. 시간만 그저 지나간 것은 아닐 터. 나는 그간 참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집안에 처박혀 있지 않고 여러 아재, 할아재들과 교류하느라 사교성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꼰대들이 있다. 그들이 과한 오지랖 덕분에 종종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인내심도 기르게 되었고, 쓸데없는 말들은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유연한 고막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계절은 바뀌어 추웠던 겨울은 지나가고 이제는 봄의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장소도 여러 번 바뀌었다. 지금은 아산에서 일을 하는데 이는 안성, 서산을 거쳐 세 번째 현장이다.

 

 

 

 

 

 

너무나 추웠던 서산의 바닷바람

 

 

 

 

그래도 나름 보람차게 보내는 숙노 라이프....인가?

일과 후에는 완벽한 나만의 시간이다. 산골 마을 모텔에 처박혀 있는지라 딱히 특별한 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다. 도심에 숙소가 있다고 해도 어차피 코로나라 그리 자유롭진 않았을 것이다. 여가 시간은 케이블 티브이를 보곤 했지만 친구인 안기사의 조언으로 요즘은 이렇게 블로그도 끄적거리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해외 주식을 시작하고 관련된 금융 공부를 스스로 하고 있으니 참으로 보람 있게 보내는 것 같다.

 

 

 

 

이번 글은 인력소로 시작한 노가다 워커로 숙식노가다만의 장점을 5가지로 추려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말 개꿀 풀타임 알바(?)인데 내가 대학교 때 이거를 모르고 스무디킹이나 아웃백 이딴 거 파트타임 알바 뛴 거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무릎 꿇고 주문받고 그런 거 하는 것보다 여기 숙노 현장에서 경광봉 흔들거나(신호수) 빨간 조끼 입고 작업자들 화기작업 할 때 불티 튀는거 감시하는 것이 (화기감시자) 훨씬 편하고 훨씬 * 2 임금이 높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금 코로나로 강제로 일을 쉬고 있는 현 상황을 존버하기에 최고인 숙노, 그러면 장점 Top 5를 말해보겠다.

 

 

 

 

1. 돈을 쓸 일이 없다

당최 돈을 쓸 일이 없다. 교통비? 필요 없다. 업체에서 다 태워준다. 물론 아닌 곳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곳은 그렇다. 식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 먹여준다. 삼시 세끼 다 챙겨주는 알바 본 적이 있나? 게다가 저녁은 심지어 술까지 먹으라고 사준다. 하지만 나는 못 마신다. 매일 저녁에 두 병씩 소주 까는 소상무 대리기사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콜라 하나씩 집어먹는다. 소상무는 맨날 귀가 때 운전시키는 게 미안한지 가끔씩 4캔 만원 편의점 맥주 사준다. 그런 거 안 사줘도 나는 감사하게 대리기사하고 있다. 여기 업체는 일시키고 주는 돈이 정말 혜자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는 것도 다 돈을 업체에서 지불하니 쓸 돈이라고는 흡연자들이 담배 사는 것 말고는 없다. 나는 군것질도 잘 안 한다. 그러니까 테슬라 주식 사보려고 한다.

 

 

 

 

2. 생활이 루틴하다(예측가능하다)

이 숙노 생활이라는 것이 군대 생활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30분에 출근해서 아침밥 먹고 7시 반에 TBM을 한다. 8시에서 10시까지 1쿼터, 30분 쉬고 12시까지 2쿼터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3쿼터, 다시 30분 쉬고 5시까지 4쿼터. '쿼터'라는 단위는 내가 붙인 거다. 이렇게 4쿼터 일하면 끝. 5시 넘어서 일시키면 아재들 입에서 욕 튀어나온다. 절대 현장에서 그렇게 못한다. 4시 40분쯤 되면 다들 죽는소리한다. 이후에 저녁밥 먹고 귀가. 이후에는 완전히 내 시간이다. 근데 8시 반 정도 되면 룸메 아재들이 하나씩 코를 골기 시작한다. 10시 되면 여기는 까마득한 밤이다. 그래서 나도 10시 30분 정도 되면 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니 얼마나 루틴한가? 내일도, 내일모레도 이렇게 반복되리라는 것을 안다. 아 맞어. 주말에 일을 한다면 오후 일과는 3시까지다. 그렇다고 일당이 깎이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 일하는 뉴비 숙노 일당은 13이다. 뉴비 숙노는 주로 안전관리자, 화기감시자, 밀폐감시자, 신호수를 맡는다. 완장 바꿔 끼면서 일한다. 예측 가능한 삶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안정감과 행복을 준다. 갑자기 진상 손님이 스트레스 주는 일도 없고, 돈도 안 주는데 야근시켜서 짜증 낼 일도 없다.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에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배관 일을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3. 몸이 건강해진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제때 밥 먹는 것만큼 건강한 생활이 있을까? 일하는 것만으로 몸이 건강해진다. 집안에 처박혀서 몸을 안 쓰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여기서는 적절한 걸음, 몸의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밥도 맛나고 영양도 좋은 편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수면시간은 매우 충분하다. 그래서 그런지 숙노에서 일하는 아재들은 나이가 먹어도 매우 건강하다. 60대 중반인 분들도 활기차다. 도시에서 60-70세의 빌빌거리는 어르신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정정함이 있다. 나도 왠지 여기서 피부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착각일 수도 있다.

 

 

 

4. 시야가 넓어진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일하고, 평소라면 갈 수 없었을 여러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된다. 나는 숙노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플랜트나 공장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안사람들은 전부 사무직이나 공무원 뿐이라서 이런 일은 접할 일이 없었다. 처음에 정말 신기하고 새로웠다.

 

 

 

허허벌판에서 그럴듯한 공장이 세워지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보는 느낌이란!

 

 

 

 

5. 안정감

꾸준하게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경제력이 주는 든든함. 안정감은 숙노가 나에게 준 큰 선물이다. 적어도 나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은 아닌 것 같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여기에 있으니까. 코로나가 나에게 던져준 깊은 좌절감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데 숙노로 일하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여기에는 나와 같이 일하는 아재들이 있다. 일 끝나면 오늘도 수고했다고 서로에게 말해주고, 방 안에서 수육 파티를 할 때 토마도 같이 한잔하자고 웃으면서 소주 한 잔을 따라주는 동료들이 곁에 있다. 위에서는 반장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사실 반장들 덕분에 마음이 위로받는 때도 많았다. 외로이 혼자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현장이 있다는 것. 이러한 요소들이 나에게 심적인 안정감을 준다.

 

 

 

 

반장님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수육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