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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의 서재

[토마의 서재 #4]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著)

 

 

클리셰라도 작가의 입담이 함께라면

  기억을 잃은 채로 낯선 방에서 깨어나는 주인공.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무슨 이유로 이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르지만 주변의 사물과 자신의 추리력을 십분 활용해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하나씩 이해나가기 시작한다. 아.. 이거 너무 뻔한 클리셰같은 시작 아닌가? 그렇지만 작가의 입담과 재치가 버무려진 스토리텔링과 함께라면 꽤나 읽을 만한 이야기가 된다. 바로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그런 소설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장기를 발휘하다

  앤디 위어의 첫 장편소설 「마션」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래도 좆됐다’라는 이제 꽤 유명해진 첫 구절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을 맛깔나게 이용한 작품이다. 식물학자이자 떠버리 속성인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끊임없는 수다를 듣다보면 웃음이 쿡쿡 새어나오게 된다. 수다와 함께 지독한 과학적 설명은 덤이다. 3인칭을 차용한 두 번째 장편소설 「아르테미스」는 재미가 확실히 덜 했다. 노잼을 참지 못하고 도중에 책장을 덮어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작가는 자신의 장기인 1인칭을 다시 사용했고 주인공인 과학교사 그레이스의 시점으로 썰과 개그를 기똥차게 풀어낸다. 여전히 설명충 기질도 다분하다.

 

 

 

 

* 주의! 이후 글에서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점점 커지는걸?

  그레이스가 우주선에서 깨어나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뭘 하는 건지 알아내려는 이야기와 과거 본인이 지구에서 겪은 기억의 편린들이 교차되어 서술되는, 빠진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끼워 맞춰지는 초반부의 흡입력은 꽤 상당하다. ㅡ 아, 여기는 지구가 아니구나! 맞아, 내 이름은 그레이스였어. 그리고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학교사였지. 근데 지금 이게 무슨 일이람? 독자들은 그레이스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올 때마다 점점 더 커지는 스케일에 놀라게 되고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 된 그레이스의 모험이 어떻게 진행될지 더욱 궁금해진다.

 

 

몰입감의 초반부, 흥미진진한 후반부

  소설의 초반부가 일종의 추리 모노로그와 같았다면 외계인 로키와 조우한 후반부터는 그레이스와 로키의 버디 무비가 진행된다. 한없이 망막한 우주에서 우연히 만난 둘이 각자의 행성을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기랄까. 그레이스가 외계인을 처음으로 만날 때에는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전개에 흥분해서 읽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줄거리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백지상태에서 읽어서 더 그랬다. 이 둘이 초반의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터놓고 주고받는 만담 같은 대화는 진행되는 이야기에 유머를 계속해서 불어넣어 준다. 무엇보다 그레이스의 해석을 거친 로키의 독특한 어투가 매력적이다. 역자가 꽤 재밌게 옮겨냈다.

 

 

외계의 지적생명체는 어떤 모습일까?

  덩치 큰 돌거미 같이 생겨먹은 외계생명체 에리디안의 외형, 언어와 습성, 그리고 생태에 대한 묘사가 꽤나 흥미로웠다. 처음 만난 이질적인, 외계 지적생명체와(그레이스 또는 로키) 소통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도 그렇고. 공돌이 로키가 다루는 만능물질 ‘제노나이트’에 대한 설명은 대충 읽었다. 그냥 뭔가 엄청난 물질이라는 것만 짚고 넘어갔다. 과학적인 설정은 적당한 선에서 이해하는 척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가끔씩 갑자기 닥친 위기상황, 예컨대 우주선의 연료탱크 고장도 로키가 제노나이트로 뚝딱뚝딱 만들어서 해결할 때는 맥이 빠지기도 했다. 제노나이트를 이용하는 로키의 공학기술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만능 해결책이란 말이지.

 

  

거 좀 적당히 넘어갑시다

  그레이스가 여차저차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 과정(그레이스에게 약물을 투여해서 정신을 잃은 상태로 우주선에 탑승시켜 발사해 버린다고? 나머지 두 크루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 없었고?),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려 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아스트로파지의 연구에 매진했던 그 그레이스가 막상 헤일메리호의 크루가 될 처지에 놓이자 히스테리에 가깝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이유의 부재(이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구만!) 등등 몇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제외하면 재미있게 읽었다. ‘그냥 넘어가자’의 정도가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너무 빡빡한 독자가 되지 않으면 많은 작품들이 더 재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키는 너무 귀여운걸!

  앞으로 몇 년 뒤에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질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어떤 모습일까나.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의 ‘마크 와트니’는 찰떡이었는데 라이언 고슬링의 ‘라일랜드 그레이스’의 모습은 매칭이 잘 안되네. 사실 난 무엇보다 로키의 모습이 제일 기대된다. 여러 개의 다리로 우주선을 종횡무진하며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그레이스를, 인간을 탐구하던 로키. 친구가 자신을 구하러 먼 곳에서 돌아오자 “나 아주 아주 아주 행복!”이라고 기쁨의 소리를 울리며 감격의 몸짓을 보여주던 로키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다. 단언컨대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건 8할이 로키 때문이다.

 

SF에 입문하실 분들에게 충분히 추천할만한 작품

이 작품으로 앤디 위어를 처음 접했고 재미를 느꼈다면 「마션」도 꼭 읽어보시길!